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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모음집/단편소설

[단편소설] 부재중

ONEHAND 2018.09.17 14:45

    꼬르륵. 그가 동생을 기다린 지 2시간이 지났다. 약속 장소에 너무 일찍 도착한 탓도 있지만, 점심 식사를 일찍 했던 것도 한몫을 했다. 기록적인 무더위 덕분에 주말의 휴게실은 무척 한가로웠다. 약속 시간까지는 얼마남지 않았지만, 눈앞의 편의점에 들어가서 무엇이든 사먹고 싶은 욕구를 참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드디어 왔구나! 빨리 가자!"
    배고픔을 참기 힘들었던 현수는 동생을 보자마자 휴계실 밖으로 이끌었다. 오늘은 동생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오랜만에 만난 것이다. 사실 생일 축하는 핑곗거리였고, 그동안 듣지 못했던 소식을 듣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다.
    "너 오기 전에 내가 찾아보니까 벌집 삼겹살이 벌집 모양으로 칼집을 낸 거라서 그렇게 부르는 거래. 웃기지 않아? 큭큭."
    "맞아. 내가 삼겹살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거든? 그런데 여기는 정말 맛있더라고! 그래서 가자고 한 거야."

    이미 입추가 지났음에도 물러가지 않은 무더위를 뚫고 그들은 식당에 도착했다. 마침 식당도 영업을 시작했는지 에어컨이 열심히 차가운 바람을 뿜어내고 있었다. 현수는 동생을 기다리는 동안 미리 정했었던 모듬벌집삼겹살을 주문했다. 그는 갑자기 메뉴판의 '청하'에 눈길이 갔다.
    "그런데 말이야. 청하가 무슨 맛이었지?"
    "그거 소주랑 도수도 다르고, 정종 같은 술 아니야?
    "아, 맞아. 그거 향이 되게 좋았던 것 같은데...."
    "먹어보면 알겠지. 이모, 여기 청하 한 병이요!"
    청하. 현수는 마지막으로 이 술을 마셨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을 헤집어본다. 아마도 2011년도 가을에 ROTC를 준비하던 대학 동기와 마셨던 것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청화와 함께 매화수도 마시면서 향이 좋은 술이라고 칭찬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크으.... 역시 내 기억에 남았던 것처럼 향이 좋네."
    "그래? 평소에 참이슬만 마셔서 잘 모르겠네. 나는 청하 마시면 훅 가더라고."

    오랜만에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던 그들은 순식간에 3인분에 해당하는 모듬 한 접시를 먹어치웠다. 현수는 술기운에 기분이 들떴는지 추가로 쪽갈비를 주문했다. 동생은 평소와 다르게 술을 마다하지 않는 오빠를 보며 소맥을 권했다.
    "오빠, 소맥도 마셔볼래? 내가 소맥을 좀 잘 말거든. 후훗."
    "오, 그래? 동생이 말아주면 마셔야지!"
    "이모! 여기 클라우드랑 참이슬 한 병씩 주세요!"
    평소 술을 즐기지 않던 현수는 마치 봉인을 해제한 항아리처럼 끝없이 술을 들이부었다. 그렇게 손과 입을 멈추지 않고 고기 한 점, 술 한 모금을 번갈아 가며 먹던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요즘...집에는 별일 없지?"
    "음. 그게 말이지...."
    그녀는 아직 거품이 풍성한 소맥을 입에 털어 넣었다. 현수는 직감적으로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는 동생을 따라 술잔을 비워냈다.

    "오빠, 부모님 사이의 일은 남녀 사이의 문제인 거지, 자식의 입장인 우리의 잘못과 우리의 문제가 아니야. 그러니까 오빠의 잘못이 아니야. 알겠지?
    "그래. 그렇기는 하지...."
    "지난번에 만났을 때, 엄마랑 아빠 크게 싸우셨다고 얘기했었지? 오빠가 집을 나간 다음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언제든지 터질 문제였던 거지 오빠 때문에 싸운 것은 아니라는 것 알지?"
    "그렇지...."
    "최근에 아빠도 집 나오시고 엄마 혼자 계셔. 유일하게 연락이 되는 가족이 나밖에 없는데, 오빠도 알다시피 내가 4학년 막 학기라서 바쁘잖아. 현관 비밀번호도 바꾸시고, 혼자서 굉장히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오빠가 집 나온 지 벌써 석 달이나 지났잖아. 물론 상황이 이렇게 된 게 오빠 잘못은 절대로 아니야. 그동안 아빠는 항상 자신이 최고라는 듯이 엄마랑 우리가 하는 말 무시하면서 밀고 나가는 것 때문에 문제였잖아. 그런데 아빠는 그렇다고 쳐도, 엄마는 너무 불쌍하잖아. 오빠가 한 번 연락 좀 해봐."
    "..."

    톡. 식당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소나기가 내리려는지 빗방울이 그의 뺨에 떨어졌다.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더위에 몸살을 앓던 골목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비가 내릴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말없이 동생을 배웅하고 돌아선 그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동안 답장하지 않았던 엄마의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다.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고, 오직 아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엄마의 한 마디가 차곡차곡 쌓여있다. 톡톡. 주르륵. 쏴아아. 하늘에서 그동안 기다렸던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제각기 빗물을 피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그는 길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비를 맞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의 뺨에 흐르는 것이 눈물인지 빗물인지.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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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에 등장하는 고유명사, 인명 등은 실제와 무관합니다.
  • 소설 쓰기 연습 중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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