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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메아리 (3)

ONEHAND 2018.07.18 18:23

    “그게 정말인가요? 사실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니…. 그러면 유미 씨가 알아냈다는 진실은 뭔가요?”
    “방금 소담 씨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그것이 자살의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에요. 모든 것은 저희 아버지 때문이었어요.”
    “에? 그게 무슨….”
    그녀는 사건이 발생한 그 날을 떠올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목소리를 들었던 전화 한 통. 그리고 최근에서야 알게 된 진실.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입을 열었다.
    “사실 저희 아버지도 직업군인이세요. 군인이라는 자부심이 굉장히 강하셔서 평소 사관학교 출신의 사위를 원하셨어요. 그런 아버지께 최종학력이 고등학교 졸업이고 민관부사관 출신인 주한 씨와 제가 사귀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연애를 한다고 무조건 결혼하는 것은 아니니까 처음에는 그냥 지켜보시기만 하셨죠.”

    그녀는 목이 멨는지 처음으로 블랙 러시안을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목구멍을 태우는 알코올과 씁쓸한 맛에 얼굴이 잠시 일그러졌다. 그렇지만 그녀가 알고 있는 진실은 그것보다 더 쓴맛을 갖고 있을 것이다. 모두가 그녀의 다음 이야기를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새 마스터도 그들의 이야기를 대놓고 경청하고 있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던 날, 저는 그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어요. 그때는 갑작스럽기도 했고 너무 황당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그렇게 이유도 물어보지 못한 채 전화는 끊겼어요.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며칠 뒤에 다시 전화를 해보니 없는 번호라고 안내멘트가 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다시는 연락할 수 없었어요.
    저에 대한 마음이 완전히 떠났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저도 그에 대한 것을 잊기로 했죠. 이후에도 마음만 먹으면 부대를 찾아갈 수도 있었지만, 이미 마음이 식어버린 사람에게 매달려봤자 저만 비참해질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아버지를 따라서 부대행사에 참여했다가 그가 총기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저는 그것이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어요. 그날 갑자기 이별 통보를 하고 우연히도 총기사고로 죽었다니 너무나 이상하잖아요? 누군가가 그를 궁지로 몰았던 것이 분명해 보였어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눈가에 맺힌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군인 아버지의 밑에서 엄하게 자란 그녀에게 눈물을 흘리는 것은 낯선 일이었다. 마스터는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고마워요, 마스터.”
    “뭘요….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오늘 여기에서 마음속의 짐을 모두 털어버리세요.”
    “하하. 네.”
    그녀는 자신의 옛 애인이던 김주한 하사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그 당시의 자료를 모두 찾아보았었다. 그러다가 사건이 발생하기 몇 주 전에 부대행사에서 그와 그녀의 아버지가 만났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사단장 취임식의 주인공이었고, 예하 부대에 속해있던 그는 당연히 참석했을 것이다.

    “그 무렵 저희는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버지께 따로 말씀드리지는 않았었지만, 주한 씨가 부대 내에서 자리를 잡으면 정식으로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제가 방에서 그와 통화하는 소리를 들으셨던 것 같아요. 저에게 직접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그 무렵에 유독 맞선 자리를 자주 만드셨거든요.”
    그녀는 아버지께 그 사실을 직접 여쭈어볼 용기는 없었다. 다만 아버지께서 김주한 하사에게 결혼을 강력히 반대하는 뜻을 전했으리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사건기록에도 이상한 점은 많았다. 총기오발사고라고 결론지어졌지만 너무나 정확하게 급소를 관통했다는 것, 시체가 발견된 장소가 근무지를 벗어나 있던 것, 이별 통보를 했던 날이었다는 것 등은 그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사(事故死) 처리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히 누군가의 압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박소담 씨가 그의 죽음에 대해서 크게 죄책감을 느끼실 필요는 없어요. 제가 사건기록을 자세하게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신문기사의 내용과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봤을 때 그 배후에는 저희 아버지께서 계실 거예요. 아마도 주한 씨는 자신의 집안과 출신 때문에 저와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괴로워했을 거예요. 그 날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을 때, 제가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들어주었더라면 그런 선택까지는 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의 죽음을 막지 못했던 저의 책임도 있어요.”
    이렇게 그녀는 자신이 알아낸 진실을 모두 털어놓았다. 박 중사는 여전히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약간의 안도감은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덕분에 온전히 자신의 잘못은 아니라는 합리화를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심정을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늘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자신의 죽음 때문에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소담 씨에게, 그가 길 안내를 해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그를 완전히 잊는 것은 어렵겠지만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그녀는 칵테일 잔을 마저 비웠다. 그리고 약간의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는 박 중사와 최 중위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마스터는 그녀를 직원용 출입구로 안내했다. 이제 칵테일 바의 마감 시간은 10분이 채 남지 않았다. 마스터는 그녀를 배웅하고 안으로 들어오며 조용히 문을 닫았다. 철컥. 최 중위는 그제야 참았던 목소리를 토해냈다.
    “이게 다 무슨 소리야? 나한테는 그런 말을 한 적 없었잖아?”
    “미안해…. 나도 언젠가는 말하려고 했었어.”
    “그 언제가 언제인데? 또 숨기고 있는 비밀이 있는 것 아니야? 다 말해봐!”
    김 하사의 죽음에 관한 진실은 밝혀졌지만, 이들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남아있었다. 부부 사이의 신뢰에 걷잡을 수 없는 균열이 생긴 것이다. 최 중위의 입장에서는 박 중사의 과거 이야기가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산 넘어 산이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불안한 눈빛으로 최 중위를 바라보는 박 중사, 그런 그를 노려보는 최 중위. 마스터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제가 끼어들 일은 아니지만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놔두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마스터! 남의 일이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것 아니에요? 나는 이 사람이 다른 비밀도 숨기고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 이제는 못 믿겠다고요!”
    박 중사는 마스터에게 도움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밤새도록 용서를 구해도 시원찮은 일이지만, 그는 지금 당장 상황을 모면하고 싶을 뿐이었다.
    “정 그러시다면 제가 알고 있는 비밀. 아니, 진실을 하나 알려드리죠. 아마도 제 이야기를 다 들으신 후에는 조금 전의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으실 겁니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에요?”
    “일단 들어보시고 판단하시죠. 하하. 하하하!”




(계속)





● 본문에 삽입된 표지는 포천 막걸리체를 사용하여 디자인 되었습니다.

● 처음으로 써보는 소설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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