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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고들 옹 (4) (완결)

ONEHAND 2018.09.15 16:00

[단편소설] 고들 옹 (1)
[단편소설] 고들 옹 (2)
[단편소설] 고들 옹 (3)

    결승전 경기의 진행은 세트별 15점을 먼저 취득하는 선수가 승점을 가져가며, 3세트를 먼저 이긴 선수가 최종적으로 우승하게 된다. 고들 옹의 결승전 상대는 일본의 쿠모모(kumomo) 선수가 되었다. 그녀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거미처럼 상대방을 자신의 실력으로 주무르며 서서히 지치게 만들어 승점을 따내는 경기운영을 보여준다. 이와 반대로 고들 옹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특유의 부드러운 샷으로 난구를 풀어내는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각자의 개성은 다르지만 누가 우승을 차지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결승전 경기는 전 세계 당구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고들 옹은 경기 시작을 앞두고 카메라 앞에서 쿠모모(kumomo) 선수와 악수를 했다. 서로를 쳐다보며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졌다. 그때 쿠모모(kumomo) 선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진심으로 경기에 임하겠습니다."
    "얼마든지요. 마음껏 해보시죠. 큭큭크...."


    두 선수 모두 밀리미터 단위로 공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선공을 차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제1세트가 시작되기 전 쿠션 드로우(뱅킹)를 통해 선공이 정해졌다. 큐볼을 헤드 레일에 가장 가깝게 멈추게 한 선수는 고들 옹 선수였다. 육안으로 판단하기에는 너무 근소한 차이라서 첨단장비를 동원한 끝에 가까스로 판정할 수 있었다. 관객들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시작된 두 선수의 묘기에 가까운 실력을 보며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고들 옹 선수의 선공을 시작으로 서로 선공을 번갈아 가며 최대 5세트의 경기가 진행된다.

    "우와.... 이게 정말 사람이 할 수 있는 거야?"
    "대박사건! 둘 다 진짜 당구에 미쳤네!"
    "이건 진짜 신들의 싸움이라고밖에는 할 말이 없다...."
    찰칵찰칵. 찰칵찰칵. 경기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탓에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사실 경기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두 선수 모두 독기를 잔뜩 품고 경기에 임했기에 선공을 잡은 선수의 일방적인 하이런(High Run)이 이어지고 있었다. 4세트에 쿠모모 선수의 하이런으로 경기가 끝나면서 2대 2의 동점 상황이 되었다. 마지막 5세트를 앞두고 관객석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5세트의 선공은 고들 옹 선수였기에 그녀의 우승을 점치는 관객의 수가 조금 더 우세했다.

    "고들 옹, 파이팅! 이번에 이기면 세계 챔피언이야!"
    마지막 5세트가 시작되었다. 고들 옹 선수는 특유의 부드럽고 정확한 샷으로 차례차례 점수를 쌓아나갔다. 그렇게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고 연속으로 득점을 하던 고들 옹 선수는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세계 챔피언을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오며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탓에 자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틱. 좀처럼 보기 힘든 고들 옹 선수의 큐 미스가 발생했다. 관객석에서는 아쉬움의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 경기의 주도권은 쿠모모 선수에게 넘어갔다. 쿠모모 선수가 크게 실수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승기를 거머쥘 기회였다.

    "아? 내가 큐 미스를...."
    "많이 긴장하셨나 봐요. 이제 제 차례이니 비켜주시죠. 후훗."
    쿠모모 선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고들 옹 선수가 쌓아놓은 점수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관객석은 크게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쿠모모 선수가 세계 챔피언의 타이틀을 가져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고들 옹 선수에게 기회가 돌아올 것인가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그렇지만 그런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쿠모모 선수도 최후의 순간을 앞두고 실수를 한 것이다. 그렇게 쿠모모 선수의 연속적인 득점 행진은 멈추었고, 주도권은 다시 고들 옹 선수에게 넘어왔다.

    다시 당구대 앞에 모습을 드러낸 고들 옹 선수의 모습은 태엽이 풀려버린 장난감 같았다. 육체적인 한계에 도달한 것인지 그녀의 행동은 흡사 슬로우 모션을 보는 것 같았다. 주심은 선수의 상태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의료진을 호출했다. 털썩. 고들 옹 선수는 바닥에 주저앉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코치가 달려 나와 고들 옹 선수의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눈동자는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고들 옹! 정신 차려!"
    "저.... 앞이 안 보여요...."
    찰칵찰칵. 찰칵찰칵. 기자들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열심히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막상막하의 두 선수가 대결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삿거리였지만, 경기 중에 발생한 이변은 더욱 관심을 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שלום. זוהי יד אחת שרוצה להפוך לאובדן הזהב. תודה שקראת את הרומן הזה עד הסוף."
    고들 옹 선수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기이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대회 관계자들은 그녀의 돌발적인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אני רוצה להביע את הכרת התודה שלי לאלה שהשאירו את הערותיהם. בפעם הבאה, אני אראה אותך ברומן מעניין יותר."
    고들 옹 선수는 이미 제정신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쇠를 긁어내는 듯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비정상적인 관절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내 그녀는 관계자들에 의해서 경기장 밖으로 끌려나가고 있었다. 심판과 해설진, 관객, 취재진까지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에 주심은 생중계 카메라 앞에 섰다.
    "음.... 판정하겠습니다. 경기 중 발생한 난동으로 고들 옹 선수의 몰수패를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2038년 세계 여자 3쿠션 선수권대회의 우승은 쿠모모 선수입니다."

    그렇게 주심의 판정으로 경기는 종료되었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경기장에는 그저 기자들의 타이핑 소리만 울려 퍼질 뿐이었다. 빌리아드 타임즈의 구라퍼(gurapher) 기자도 조금 전 찍었던 사진을 확인하며 빠르게 기사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진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카메라가 흔들려서 잔상이 남은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모든 사진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사진 속 고들 옹 선수의 몸에는 관절 마디마다 무엇인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은 연기처럼 확실한 형태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치 꼭두각시 인형을 조종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은 고들 옹 선수가 사용하던 당구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구라퍼(gurapher) 기자는 고개를 돌려 아직 경기장 바닥에 떨어져 있을 당구채를 눈으로 찾아보았다. 하지만 당구채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원래 이곳에 없었던 것처럼 당구채는 자취를 감추었다.

    2041년 가을. 23살의 미파솔(miphasol)은 세계 당구 챔피언을 꿈꾸고 있는 아마추어다. 그는 오늘도 당구 연습을 열심히 하고 집에 돌아왔다.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가니 책상 위에는 가로로 길쭉한 상자가 놓여 있었다.
    "엄마! 이게 뭐예요?"
    "글쎄다? 낮에 배달왔었는데, 네가 주문한 것 아니니?"
    미파솔은 누가 보낸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상자의 겉을 살펴보았지만 '취급 주의' 스티커만 잔뜩 붙어있었고, 아무런 단서를 찾아내지 못했다. 궁금증이 더욱 커진 그는 상자를 열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상자 안에는 당구채 하나가 들어있을 뿐이었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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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에 등장하는 고유명사, 인명 등은 실제와 무관합니다.
  • 소설 쓰기 연습 중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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