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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수박의 꿈

ONEHAND 2018.09.15 15:40

    나는 수박이다. 요즘 날씨가 너무 덥다. 아무리 내가 일광욕을 즐긴다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하다 싶은 날씨다. 이렇게 더위에 지치는 날에는 (수박)꼭지가 돌아버릴 것 같다. 이럴 때는 이파리 밑에 숨어서 수박밭 주인이 준 특제 비료를 먹는 것이 최고다.

    "어머, 언니 요즘 검은색 줄무늬가 많이 진해진 것 같은데 비법이라도 있어요?"
    "호호호. 비법이랄게 뭐 있겠니? 그저 일광욕 열심히 하고, 비료 꼬박꼬박 챙겨 먹는 거지."
    "너무 부럽다! 나는 언제쯤이면 언니처럼 동글동글한 몸매에 선명한 줄무늬를 갖게 될까요?"
    "너도 크면 다 이렇게 될 거야. 너무 조급해하지 말아. 후훗."
    "히잉. 정말이죠?"

    아직 연두색에 희미한 줄무늬를 가진 녀석이 내 미모를 부러워하며 불평을 한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이 수박밭에서 나만큼의 미모를 자랑하는 수박은 드문 것 같다. 누구라도 한 번 보면 반해버릴걸?

    "저기, 언니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어요?"
    "응? 그게 무슨 말이니?"
    "얼마 전에 보니까, 옆 동네 수박 친구들 중에서 피부가 깨끗한 애들은 단체로 유학을 떠났더라고요. 수박밭 주인이 잘 자랐다고 마트에 보내준다는 걸 들었어요. 거기에는 해외에서 온 친구들도 있다고 들었어요. 굉장하죠?"
    "그래? 굉장하구나. 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줄무늬를 가진 수박이 되고 싶어! 그래서 '줄무늬' 하면 얼룩말이 아니라 수박이 떠오르게 하는 거야."
    "우와! 정말 멋진 생각이에요. 언니의 줄무늬는 이곳에서 알아주니까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 같아요. 헤헤."

    나도 마트라는 곳은 소문으로만 들어서 알고 있다. 해외를 포함한 각 지역에서 예쁘고 멋진 과일들이 모여서 서로를 뽐내는 곳이라고 들었다. 사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광욕하고 비료를 챙겨 먹는 것은 마트에 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세계 최고의 수박이 된다면 너무나 행복할 것 같다. 나에게도 마트에 갈 기회가 있겠지?

    매일 땅의 기운을 쪽쪽 빨아먹고, 밭에서 뒹굴며 일광욕을 즐기다 보니 보름달처럼 살이 올랐다. 수박밭 주인은 내가 다 익었다면서 마트에 데려갔다. 마트에는 나 말고도 참외, 복숭아, 포도 등의 친구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역시 여름이라서 그런지 내가 제일 인기가 많다. 내 수박 친구들이 차례차례 팔려 나갔다. 팔린다는 것이 아직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추측해보건대 사람들과 함께 지낼 기회를 얻는 것 같다. 신중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검은 줄무늬 화장을 평소보다 진하게 했다.

    "오빠, 이거 되게 잘 익은 것 같다. 그렇지?"
    "겉보기는 괜찮네. 수박 꼭지는 괜찮아?"

    그녀는 나를 번쩍 들어 올리더니 꼭지를 유심히 살펴본다. 내가 모델처럼 뽐내고 있기는 했지만, 막상 가까이에서 들여다본다고 생각하니 부끄럽다. 그런데 꼭지는 나의 매력 포인트가 아니다. 이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수박의 세계에서는 맑고 짙은 녹색 피부에 선명한 검은색 줄무늬가 건강미의 기준이 된다.

    "꼭지만 봐서는 잘 모르겠는데...."
    "그럼 한번 두드려봐. 통통 소리가 나면 신선하고 맛있는 수박이야."

    통, 통, 통. 아야! 그녀는 갑자기 나를 주먹으로 때렸다. 나는 그저 미모를 자랑했을 뿐인데, 왜 때리는 것일까? 수박밭에 있을 때는 내 몸에 멍이라도 생길까 봐 다들 조심히 다루었는데, 이곳 마트에서는 예쁘고, 잘생겼다고 매를 맞는다. 뭔가 이상하다.

    "저희 이걸로 할게요. 노끈으로 포장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그녀는 조금 전에 때린 것이 미안했는지 노끈으로 만들어진 옷을 입혀주었다. 검은 줄무늬를 살짝 가리는 것이 완전히 보여주었을 때보다 더 매력적인 것 같다. 오늘부터 이 사람들과 함께 지내게 되는 것일까? 웃는 얼굴로 대화하는 그들을 보니 좋은 사람들인 것 같다. 다행이다.

    "오빠, 이따가 집에 가서 수박 화채 먹자! 응?"
    "나는 에이드도 만들어 먹으려고 믹서기 준비해놨어. 하하하."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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