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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모음집/단편소설

[단편소설] 메아리 (2)

ONEHAND 2018.07.18 14:31


    “혹시 예전에 내가 말했었던 김 하사… 기억나?”
    “아! 4년 전에 총기오발사고로 죽었다는 그 사람?”
    “네, 맞아요. 그 사람이 저의 옛 애인이었어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박 중사는 눈을 질끈 감으며 괴로워했다. 최 중위는 부대로 전입되기 전에 있었던 일이라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박 중사가 그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애인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그녀가 굳이 아는 척을 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고 괜히 기분이 나빴다.

    “그랬군요. 그런데 저희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가요?”
    “네, 말씀드릴게 있었어요. 오늘 이렇게 우연히 마주치다니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최근에 그의 죽음에 대해서 조사하다가 진실을 알았거든요. 혹시 박 중사…. 아니, 박소담씨는 알고 계셨나요?”
    모두의 시선은 박 중사에게 향했다. 그는 고개를 숙였고 시선은 초점을 잃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아, 결국에는 다시 돌아오는구나. 돌아왔어.’

    “진실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자기야, 말 좀 해봐. 박소담!”
    최 중위는 박 중사의 대답을 재촉했다. 갑자기 나타난 여자가 진실을 알았다고 말하고, 자신의 남편은 울상을 짓고 있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다 말할게. 어떻게 더 숨기겠어. 하….”
    박 중사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가 상병이 되었을 때에 중대장의 권유로 부사관 학교에 입소했고, 부사관으로 임관할 수 있었다. 반면에 김 하사는 민간부사관 출신으로 부대의 이등병과 다를 바 없는 햇병아리에 불과했다. 당연히 민간부사관 출신인 김 하사는 모르는 것이 많았고 실수 투성이였다. 동료 부사관들은 김 하사를 은근히 따돌렸고, 박 중사를 중심으로 괴롭히기도 했었다.

    “집안 사정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민간부사관에 지원했다고 들었어. 하지만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군생활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녀석이랑 부사관 동기라는 것이 너무 싫었어.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박 중사는 잠시 한숨을 쉬고는 그녀를 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김 하사가 죽기 며칠 전에 행정보급관의 주최로 야유회를 갔었어요. 포천 산정호수 근처 펜션에서 족구도하고 고기도 구워먹으면서 놀았죠. 그곳에서도 저와 동료 부사관들은 김 하사를 골탕 먹일 궁리를 했어요. 마침 보물찾기로 경품을 주는 행사를 진행했어요. 그때 땅을 파서 함정을 만들자고 생각했었고, 실제로도 함정을 만들었어요.”
    “그는 함정에 빠졌었나요?”
    “아, 김 하사가 눈치를 챘었는지 함정에 빠지지는 않았어요.”

    박 중사는 자신의 과거행동을 입으로 내뱉으면서 새삼스럽게 그것의 잘못을 깨달았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반성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그녀에게 반드시 용서를 구해야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저는 못되게 굴면서도 장난이라고 생각하며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변명처럼 들리시겠지만 김 하사가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을 거라고는 짐작도 못 했어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했는지도 몰라요. 남몰래 힘들어했을 김주한 하사에게 정말 미안해요. 그의 죽음은 사실 총기오발사고가 아니라 자살이었어요…. 부대 밖에서까지 괴롭힘을 멈추지 않았던 제가 가장 큰 원인이겠죠. 그 사건이후에 부대에서도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사고사(事故死)로 덮어 버렸어요. 그의 자살은 전부 저 때문이에요. 그리고 유미 씨께도 정말 미안해요.”
    박 중사는 그녀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자책의 의미인지 후회의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그의 행복했던 순간은 끝나는 것일까. 이제 박 중사의 군복무와 결혼생활은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뒤늦게 알아낸 진실을 폭로할 것인가, 지나간 일은 용서하고 다시 덮을 것인가.

    마스터는 무거운 분위기를 깨기 위해서 주문받은 칵테일을 내밀었다.
    “주문하신 블랙 러시안 나왔습니다. 굉장히 독한 칵테일인데 괜찮으시겠어요?”
    아주 잠깐이었지만 멈춰있던 공기가 다시 흐르는 것 같았다.
    “당연히 알고 주문했죠. 그리고 그런 말은 만들기 전에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하. 그러네요. 평소보다 깔루아를 조금 더 넣었으니 쓴맛은 약할 겁니다. 이제 마감 시간이 가까워서 매장 입구는 잠그겠습니다. 나가실 때는 직원용 출입구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철컥. 마스터는 매장 입구에 자물쇠를 채우고 간판의 불을 껐다. 그녀는 블랙 러시안을 마시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짙은 갈색의 투명한 그것을 통해 무엇인가를 보는 것 같았다. 옛 애인 김주한 하사를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최 중위는 그와 그녀를 번갈아가면서 쳐다보았다. 도저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에 잠자코 듣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굳게 다물었던 입을 떼었다.

    “그런 일도 있었군요. 저도 주한 씨가 부대에서 동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그가 가끔씩 이야기를 해줬거든요. 하지만 그는 그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어요. 자신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고, 항상 짐이 되는 것 같아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거든요. 그리고 그가 죽음을 택한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에요.”
    박 중사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그는 여태껏 김 하사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며 숨겨왔었다. 그런데 그녀는 박 중사의 탓이 아니라고 말한다. 박 중사의 긴장은 다소 풀렸지만 또 다른 진실은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는 얼굴의 눈물자국을 닦아내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계속)





● 본문에 삽입된 표지는 포천 막걸리체를 사용하여 디자인 되었습니다.

● 처음으로 써보는 소설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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