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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아재리그 (2)

ONEHAND 2018.09.15 15:15

[단편소설] 아재리그 (1)

    자신을 ‘젤나가’ 종족이라고 소개한 그것은 빛이 사그라지더니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프로토스는 자신들이 진화시킨 종족이라며, 약점을 알고 있으니 원한다면 결승전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스타크래프트의 스토리 설정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그게 진짜로 있는 이야기였던 걸까?
    “하하…. 이거 너무 믿기 힘든 상황이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런데 어떻게 이길 수 있게 해준다는 거야?”
    “당신은 나와 계약을 맺으면 됩니다. 계약이 성사됨과 동시에 ‘젤나가의 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을 승리의 순간으로 이끌 것입니다.”
    “계약이라고? 그러면 조건이 있을 텐데?”
    “조건은 매우 간단합니다. 경기가 끝난 뒤에 테란 종족의 스파이로 잠입하는 것입니다. 최근 전투력이 강력해진 그들의 약점을 파악하기 위함입니다. 단 하루만 수고해주시면 됩니다.”
    한 번 생각해보자. 아직 이번 여름휴가를 사용하지 않았으니 하루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 아내에게는 오랜만에 부산에 있는 친구 동윤이를 만나러 간다고 하면 될 테니 문제없을 것 같다.
    “좋아! 계약하겠어. 젤나가의 손인지 발인지 있으면 이길 수 있는 것 확실하지?”
    “물론입니다. 이제 계약이 성사되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이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그것은 다시 에메랄드빛을 발하더니 사라져버렸다.


    “여보! 어제 거실에서 잔 거야? 일어나봐!”
    “어….”
    “어휴, 밤새 게임을 하다 잔 거야? 이 사람이 정말! 애도 아니고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내가 못 살아!”
    새벽에 그것이 사라지고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분명히 젤나가의 손을 계약했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니, 밤에 급하게 업무지시가 와서 마무리하느라 그랬어.”
    “거짓말 너무 티 난다. 새벽에 소리까지 지르면서 게임을 했던 것 다 알거든?”
    역시나 아내의 말은 정확하다. 흡사 관심법이나 독심술을 사용하는 것 같다.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던 능력일까? 내가 말하지 않은 것, 숨기고 싶은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혹시 내 귀에 도청장치를 심어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될 때도 있다. 내가 뭘 했는지 맞추는 것보다 로또 번호나 맞춰줬으면 좋겠다.
    아재리그 결승전은 오늘 저녁에 예정되어 있다. 남들은 관심이 없겠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날이다. 밤을 새워가면서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했던 적이 마지막으로 언제였을까. 어쩌면 이것이 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정신력과 체력을 쏟아붓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앞으로 점점 체력은 약해질 것이고,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될 것 같다. 그나마 남아있는 열정의 불씨를 일으켜준 것이 ‘아재리그 시즌 7 : 비상하는 아재’였다.

    결전의 순간을 앞두고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장어 전문점에 갔다. 아이들이 내 식성을 닮았는지 장어를 참 좋아한다. 오랜만에 배 터지게 장어를 먹고 가야겠다. 확실히 내 체질에 잘 맞아서 그런 것인지 장어를 먹고 나면 눈빛이 또렷해지고, 몸이 가벼워지면서 행동이 민첩해진다. 정교한 컨트롤을 자랑하는 디제스티프(digestif) 님을 이기기 위해서는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자신감이 솟아오르는 느낌 덕분에 기분은 좋다.
    “여기 복분자주 한 병 주세요!”
    “응? 나 오늘은 술 안 마실 건데.”
    “장어구이 먹을 때는 복분자주가 필수 아니겠어? 호호호.”
    “나는 이따가 만날 사람이 있어서 술 마시면 안 되는데….”
    “집에 안 들어가고? 주말에는 집에 붙어있지 어디를 가려고 그래!”
    웃음을 띠고 있던 아내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가는 것이 보였다. 하….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허락을 구하는 것보다 이미 저지른 것에 대한 용서를 구하기가 더 쉽다는 말이 생각났다. 무책임한 말인 것 같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이 방법이 좋을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부산으로 이사 갔다고 했던 내 친구 동윤이 기억하지? 걔가 오랜만에 서울로 놀러 왔대. 그래서 얼굴도 보고, 잠깐 같이 놀려고 약속 잡아뒀어.”
    “정말이야? 나한테는 말도 없이 갑자기 약속을 잡았다고? 음…. 그럼 나도 같이 갈래. 저번에 만났을 때 받았던 선물이 아주 마음에 들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아, 그게 말이야. 다른 친구들도 불렀거든. 남자들끼리만 모이기로 한 자리라서 같이 가는 것만은 좀 참아주라.”
    아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본다. 왠지 또 거짓말을 들키게 될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집에서는 게임을 못 하니 거짓말을 해서라도 PC방에 가야 한다.
    “뭔가 수상한데…. 대신 일찍 들어와야 해. 알겠지?”
    “물론이지!”
    뭔가 얼렁뚱땅 잘 넘어간 것 같다. 평소 같았으면 계속 캐물어서 들통이 났을 텐데, 웬일인지 슬쩍 눈감아주는 느낌이었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언제였더라?
    “자, 여기 장어 꼬리도 먹어봐. 역시 몸보신에는 이게 최고 아니겠어? 호호호.”
    “그렇지. 그게 최고지! 하하하….”
    아내의 웃음소리를 듣고 소름이 돋았지만,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며 숨을 크게 들이켜 본다. 몇 시간 뒤에 있을 결승전을 대비해서 시뮬레이션을 해보자. 경기 시작 한 시간 전에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한다. 요즘 들어서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걸그룹 ‘BLOCKPUNK’의 ‘뜨루뜨루’를 30분 동안 들으면서 명상을 한다. 명상이 끝나면 냉동실에 미리 넣어두었던 캔맥주 ‘호구든(Hoeguden)’을 꺼낸다. 그러면 모든 준비는 끝이 난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컴퓨터를 상대로 미리 생각해둔 빌드를 차근차근 진행해 본다.

    “안녕하세요! 아재리그 시즌 7 해설을 맡은 강서인입니다. 평생 기억에 남을 정도로 매우 더웠던 여름의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아재리그도 마지막을 향하고 있는데요! 오늘 결승전 경기 이후에 우승 트로피의 주인이 될 스티미언은 누가 될까요? 너무 궁금하시죠? 얼른 만나보시죠.
    먼저 브레인토스 디제스티프(digestif) 님을 소개합니다. 준결승전 경기에서 다크 템플러의 활약이 눈부셨었죠? 정면에서 공격하는 척 혼란을 주고, 뒤에서는 다크 템플러가 드론을 열심히 썰고 다녔죠. 이번에는 어떤 컨트롤을 보여주실까요. 하하.
    다음은 브레인토스에 맞설 상대 칼부림저그 칼바람(keenwind) 님을 소개합니다. 준결승전 경기에서는 디파일러의 다크 스웜을 잘 활용해서 공격과 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다가 마지막에는 커멘드 센터를 퀸으로 감염시키는 세레머니 까지 보여주었죠. 인페스티드 테란을 아재리그에서 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자, 이제 양 선수 모두 준비가 끝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활약을 보았을 때 역대 최고의 경기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디라이브 시청자분들도 준비되셨나요? 그럼 경기 시작합니다!”
    찌직. 뽁! 꿀렁꿀렁. 꿀꺽.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캔맥주 호구든의 뚜껑을 따고 조금 마셨다. PC방에 몰래 가져와서 그런지 더 맛있다. 나머지는 경기가 끝난 이후에 마시려고 한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가 ‘술이 식기 전에 적장의 목을 베어 오리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나는 호구든의 탄산가스가 다 빠져버리기 전에 돌아올 것이다. 칼부림저그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마!





(계속)




[단편소설] 아재리그 (3) (완결)


  • 소설에 등장하는 고유명사, 인명 등은 실제와 무관합니다.
  • 해당 게임을 모르시는 분은 이해가 힘드실 수 있습니다.
  • 소설 쓰기 연습 중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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