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손이 되고 싶은 한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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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아재리그 (1)

ONEHAND 2018.09.15 15:10

    나는 아재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금세 아재가 되어버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군복무를 하면서 처음으로 '아저씨'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진짜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당시에 답답한 내무반(생활관) 생활 속에서 유일한 즐거움은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를 보는 것이었다. 분대원과 외박을 나가면 스타크래프트 팀전을 하는 것이 당연했다. 전역 이후에도 스타크래프트 게임의 인기는 여전해서 한때는 프로게이머를 해보려는 생각도 해봤었다.
    대학교에 복학하고 나서도 틈만 나면 PC방에 들려서 스타크래프트를 했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 동맹을 맺고 게임을 하다 보면 밤을 새우기 일쑤였고, 다음 날 오전 강의시간은 자연스럽게 취침시간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학업보다 스타크래프트를 우선시하다 보니 래더 점수가 준프로에 가까워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4학년이 되면서 전공 관련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와 각종 입사시험 기출문제집을 풀면서 게임을 할 시간이 줄어들었고, 본격적으로 면접시즌이 되면서 스타크래프트는 점점 잊혀갔다.

    2018년 여름. 이제 내 나이도 30대 후반이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살다 보니 ‘나’라는 사람이 원래 무엇을 꿈꾸었었는지 잊어버린 것 같다. 어느 순간 습관이 되어버린 스팀잇(Steemit)에 접속해본다. 아내가 매일같이 돈타령하는 바람에 요즘 유행이라는 암호 화폐에 대해 찾다가 알게 된 것이 스팀잇인데, 생각보다 다양한 주제의 글이 올라오면서 눈팅 중이었다. ‘아재리그 시즌 7 : 비상하는 아재’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본문을 빠르게 읽어나갔고, 잠시 생각할 틈도 없이 참가신청을 해버렸다.
    “아직도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사람이 있네? 하하하.”
    “뭔데 혼자서 웃고 그래? 여름 휴가비라도 들어왔어? 내일 민지 학원비 내는 날이니까 출근하면서 계좌이체 잊지 말고 해둬. 그리고 할 일 없으면 음식물 쓰레기 좀 버리고 와!”
    터벅터벅. 슬리퍼를 끌면서 아파트 분리수거장으로 향했다. 한쪽에 마련된 음식물 쓰레기 수거통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아파트 입구 근처의 벤치에 앉아서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아재리그’ 이름을 참 재미있게 지었다고 생각했다. 게임에서 손을 놓은 지 10년은 훌쩍 넘은 것 같은데 잘 할 수 있을까? 오랜만에 준식이랑 소주 한잔하고, PC방에 가서 연습해봐야겠다.

    “안녕하세요! 아재리그 시즌 7 해설을 맡은 강서인입니다. 이번에는 참가 신청을 하신 분이 많으셔서 32강 A조부터 경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경기에서는 철벽테란….”
    오랜만에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지켜보니 나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비록 프로게이머의 경기는 아니었지만 가끔 보여주는 정교한 유닛 컨트롤에서 그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머리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손이 기억하는 것처럼 보였다.
    “뭐 해? 그런 것 볼 시간에 널어놓은 빨래나 좀 개켜봐. 그리고 내가 저번에도 양말 뒤집어서 벗어놓지 말라고 했었지!”
    땀 냄새가 흥건하게 배어있는 양말이 내 얼굴로 날아왔다. 앞으로는 아내가 잠들었을 때 몰래 봐야겠다. 그나저나 다음 경기는 내 차례인데 연습을 많이 해두어야 할 것 같다.

    아재리그 결승당일 새벽. 어쩌다 보니 아재리그 결승전까지 살아남았다. 마지막 상대는 브레인토스 디제스티프(digestif) 님이다. 평소 주류와 관련된 글을 자주 올리셔서 상당히 스마트하신 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손놀림도 상당히 화려하신 분이었다. 솔직히 나는 그분을 이길 자신이 없다. 그래서 아내와 아이들 몰래 불이 꺼진 거실에서 노트북을 꺼내고 스타크래프트 연습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해서는 질 것이 뻔해 보였다.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까….
    “그렇게도 이기고 싶나요?”
    “으아아아!”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돌려보았다. 어두운 거실에 에메랄드빛을 내뿜는 존재가 있었다. 그것은 얼굴이나 몸과 같은 형태는 없었지만,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스스로 뺨을 때렸지만, 그 존재는 여전히 있었다.
    “뭐, 뭐야?”
    “나는 ‘젤나가’의 예언가이자 무당입니다. 당신의 열정이 나를 이곳으로 불러냈습니다.”

    자신을 ‘젤나가’ 종족이라고 소개한 그것은 빛이 사그라지더니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프로토스는 자신들이 진화시킨 종족이라며, 약점을 알고 있으니 원한다면 결승전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스타크래프트의 스토리 설정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그게 진짜로 있는 이야기였던 걸까?
    “하하…. 이거 너무 믿기 힘든 상황이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런데 어떻게 이길 수 있게 해준다는 거야?”
    “당신은 나와 계약을 맺으면 됩니다. 계약이 성사됨과 동시에 ‘젤나가의 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을 승리의 순간으로 이끌 것입니다.”
    “계약이라고? 그러면 조건이 있을 텐데?”
    “조건은 매우 간단합니다. 경기가 끝난 뒤에 테란 종족의 스파이로 잠입하는 것입니다. 최근 전투력이 강력해진 그들의 약점을 파악하기 위함입니다. 단 하루만 수고해주시면 됩니다.”
    한 번 생각해보자. 아직 이번 여름휴가를 사용하지 않았으니 하루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 아내에게는 오랜만에 부산에 있는 친구 동윤이를 만나러 간다고 하면 될 테니 문제없을 것 같다.
    “좋아! 계약하겠어. 젤나가의 손인지 발인지 있으면 이길 수 있는 것 확실하지?”
    “물론입니다. 이제 계약이 성사되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이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그것은 다시 에메랄드빛을 발하더니 사라져버렸다.





(계속)




[단편소설] 아재리그 (2)


  • 소설에 등장하는 고유명사, 인명 등은 실제와 무관합니다.
  • 해당 게임을 모르시는 분은 이해가 힘드실 수 있습니다.
  • 소설 쓰기 연습 중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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